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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에리히 프롬, 소비가 낳은 허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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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삶에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중 하나는 소비하는 것입니다. 소비는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그 중요성이 떠올랐습니다. 자본주의를 갖춘 나라라면 소비가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기 마련입니다. 소비가 줄면 경제는 악화하고 소비가 많아지면 그만큼 경제 활성화가 활발히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현대인에게 소비란 인생을 함께하는 동반자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소비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소비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꽤 당황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소비가 우리에게 끼치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보다 우리가 구매한 어떤 물건이나 문화가 나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런 부분에서 정의를 다시 내립니다. 단순히 소비를 생각하기보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심층적으로 파악하게 된다면, 삶을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따라 수동적으로 살아가지 않고 ‘나’를 기준으로 뻗어나가는 능동적 삶을 이어가는 기회를 쟁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보통 소비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사회의 눈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가 정말 행복을 가져다주는 걸까요? 분명 우리 사회는 ‘소비는 행복이 아니다’라고 미디어에서도, 교육 현장에서도 가르치고 있지만, 실제 삶에서 갖고자 하는 욕구를 소비로 채우면 기분 좋은 감정이 느껴집니다. 그렇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은 소비를 소중한 것으로 여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소비가 나쁜 것이냐?’라는 질문이 당연히 떠오릅니다. 소비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하고, 소비를 통해 획득한 음식, 편의 물품 등이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지 않느냐고 주장합니다. 맞습니다. 결코 소비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냥과 교환으로 필요한 무언가를 채웠고 그것을 소비해 살아왔습니다. 그저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사람들이 현재의 풍족함을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소비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계속되는 소비는 인간에게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만들어야 하지만 실상은 우울증, 소외감, 이기심 따위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소비를 바라보는 관점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은 소비가 인간에게 심리적으로 어떻게 작용하고 있냐는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공허함, 고립감 등을 메우기 위해 다른 사물, 외부에서 들여오는 물품으로 자아를 채워 그것을 극복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정말 흔하게 보이는 모습은 먹는 데서 관찰됩니다. 한 사람이 직장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저녁은 먹었지만, 배 속이 허전하고 아무것도 먹은 것 같지 않은 상태가 이어집니다. 이미 밤이 늦었지만 스마트폰 배달 앱을 실행해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주문합니다. 밤늦게 먹은 음식이 왜 이렇게 맛있게 느껴지는 건지 이 때 먹는 음식을 통해 행복함을 느낍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이런 사례들은 정말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글을 쓰는 저 또한 어려운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배고픔과 상관없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고 그것을 참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 같은 삶은 건강을 잃어가는 방향으로 악순환이 점점 커지고 반복됩니다. 아마도 떠오르는 병명이나 그 몸 상태가 어떨지 바로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이 현상은 거대한 사회 시스템 앞에 ‘나’는 매우 미세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며 감정적으로는 불안과 고립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소비에 대해 어떤 비판적인 시선을 가져보면 좋을까요? 에리히 프롬은 두 가지 원칙적인 입장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상대주의적 입장입니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어떤 욕망이든 괜찮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입장은 규범적 입장입니다. 인간의 욕망을 규범적(규칙, 법, 원칙의 의미)으로 보면 ‘좋은’ 욕망과 ‘나쁜’ 욕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좋은 욕망은 인간의 근원적 관심, 생명력 등을 키우는 것을 의미하고, 나쁜 욕망은 관심을 빼앗고 외부 힘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욕망입니다.

소비사회에서 궁극적인 목표

소비를 이렇게 두 가지 비판적인 시선으로 나누어 보았지만, 명확히 그것을 재단하듯 나누기는 까다롭습니다. 그러나 의미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무엇이 좋고 나쁨을 가리는 노력을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영원히 공허함 속에 허우적거릴 것입니다. 인간에게 유익한 욕망을 찾아내는 것은 인류적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 사회를 당장에 뒤흔들어 엎어야 한다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물론 변화의 필요성이 많이 느껴지는 시기이지만 그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좋은 규범적 욕망을 행하는 인간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변화는 개인에게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허락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직장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지쳐 더 이상 이런 질문에 관한 생각은 뒷전이기 마련입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지배층의 삶을 누리고, 그 삶이 사라질까 걱정하느라 이런 문제를 고민하지 못합니다.

 

수동적 삶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현대인은 강박적으로 일하고, 운동하고, 휴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활동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삶을 어떻게 해결하겠어?, 뭐 어때 늘 이렇게 살아왔는데!’라는 식의 불편함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지양해야 합니다. ‘능동성, 활동성’을 이해하고 내재된 소비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쉼 없는 분주함과 행동에서 자유를 얻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정리해 드렸습니다. 내용이 쉽지 않지만,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작은 의미까지 되짚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꼭 읽어보시고 삶을 사랑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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