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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에리히 프롬의 자유는 어디로 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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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정리

지난 글에서는 에리히 프롬이 생각하는 자유에 관해 이야기 해봤습니다. 다시 정리 해보면, 크게 자유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자유는 근대에 들어서 획득하게 된 자유, 전통적인 규칙을 파괴함으로써 얻은 자유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규칙을 와해함으로써 얻게 되는 자유에만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이를 보고 에리히 프롬은 소극적 자유라고 말합니다. 소극적 자유에는 규칙의 파괴뿐만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만든 규칙으로부터의 도피도 포함됩니다. 이러한 규칙으로부터의 도피는 피학적, 가학적, 파괴적 성향을 말합니다.

 

 지난 글에서 가장 핵심은 아무래도 ‘인간은 자유를 진정으로 누리고 있는가?’하는 질문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무엇인가로부터 도피함으로써 얻었다고 느끼는 자유는 사실 자유가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가두고 자유를 얻었다고 외치는 꼴입니다. 일상에서 도피하고 있는 것이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본다면 내가 느끼고 있던 자유라는 것의 실체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행동하게 만들고 느끼게 만드는 작용이 외부에서 온 것으로, 내가 느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자유인가?

 다시 돌아와서 인간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알아보려 합니다.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감정을 배제하라고 부추깁니다. 과학이 그러하고 노동문화가 그러합니다. 권력자는 노동자에게 이성 중심을 외치고, 감정은 쓸모없는 것이라 주장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이것은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인간을 자동화되고, 기계화된 것으로 쓰이는 부품 같은 존재로 그 문화를 만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일터에서 감정은 사치이며, 그것을 내비치는 순간 뒤처지는 무기력한 존재로 낙인찍히곤 합니다. 인간을 노동 사회에 순응하게 만드는 문화는 우리에게 무기력함을 증가시키고, 그 영향으로 더욱더 어딘가에 의존해야 하는 존재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는 분명 자신 정체성에 대해 큰 회의를 갖기 마련입니다.

 

 현대인은 외적인 속박으로부터는 분명 자유로워졌습니다. 겉보기로는 분명 활기차고 의미 있어 보이는 행동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사회적 욕구만 채우려는 현대인은 분명 점점 다가오는 무력감 앞에 결국 백기를 들게 될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자동화된 인간의 불편한 무의식적 고통을 직면하지 않으면, 우리 인간문화의 뿌리를 뒤흔드는 어려움을 눈치챌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소극적 자유의 상태, 그러니까 무엇인가에서 도피함으로 자유를 얻었다고 느끼는 것이 자연스럽고 기초적인 환경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인간이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어렴풋이나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소극적 자유의 상태가 기본상태라고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적극적인 자유를 인간이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렇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그렇게 믿을 수는 있습니다. 인간이 ‘자유’를 누리면서도 무기력해지지 않고, 개개인으로 살아가지만 분명 우리 지구촌의 일원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자유에서 나오는 가장 큰 특징은 자발성 입니다. 자발적이라는 것은 문화, 폭력, 외로움 등과 같은 외부적 요인에 반발해 튀어나오는 행동이 아닌 진정한 자유의지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을 활용하는 것, 그것이 창조적 활동이며, 자발적 활동의 특성입니다. 자발적인 사람의 대표적 유형이 바로 예술가와 어린아이들입니다. 우리에게 ‘아이들의 매력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자발성이 있기 때문’이라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것만큼 인간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인간의 지향점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무엇일까요? 늘 그래왔던 대로 감각적, 감정적 만족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면 진실을 눈앞에 두고 무기력과 고독함이 가슴속에 자리 잡은 채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일시적으로 자유와 힘을 쟁취했다고 느끼는 것들이 아니라 자아의 추구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 인류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말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가 우리 현대인에게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전통의 규율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지만 동시에 외롭고 쓸쓸한 존재로 다듬어져 왔고 타인의 목적에 이용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거짓된 자유에 목적을 두지 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한번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볼 때입니다. 현재의 불안함이 과연 자유 -지금까지 정의해 왔던- 라는 달콤함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어딘가에 속박되고 싶고, 혹은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자유라는 이름의 어떤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형태의 것은 아닌지. 삶이 얼마나 자아의 그대로를 표현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진정한 자유의 정의를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삶은 여러 방식으로 우리의 자유를 앗아가려 합니다. 그것을 뺏는 자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눈앞의 욕구만 채우는 방식의 극단적 삶의 태도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지키려고 노력해 온 자유라는 가치를 발전시키고 보전하기 위해 개인과 인류로서 노력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모두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나오는 내용들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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